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한국사

고조선, 부여, 고구려, 옥저, 동예, 삼한

by _Ahmooooo 2023. 4. 8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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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 고조선 >

건국

  • 만주의 랴오닝 지역~한반도 서북지역
  • 청동기 문화 배경, 우리 역사상 최초의 국가(삼국유사 기록)

 

고조선의 세력 범위

  • 비파형동검, 탁자식 고인돌, 미송리식 토기, 거친무늬거울

 

철기의 전래와 고조선의 발전

  1. B.C. 5C / 중국에서 철기 전래
  2. B.C. 3C / 부왕, 준왕 등 강력한 왕의 등장, 왕위 세습됨 → 상, 대부, 장군 등 관직 설치
  3. B.C. 2C / 위만이 무리를 이끌고 고조선으로 이주 → 준왕의 신임을 얻어 국경 방어 역할 맡음 → 준왕 몰아내고 왕위 차지
  4. 위만 조선의 발전 : 철기 문화 확산, 영토 확장, 한반도 중남부 진과 중국 한 사이에서 중계무역 독점, 중국 한과 대립
  5. 멸망 : 한 무제 침략 → 지배층 내분으로 왕검성 함락되어 멸망(기원전 108) → 한 군현 설치, 고조선 유민들 한반도 남쪽으로 이주
    ★ 위만조선이 고조선을 계승했다는 근거 : 옷차림, 상투, 고조선의 제도, 이름

 

고조선의 8조법

  • 사람을 죽인 자는 사형에 처한다. > 생명, 노동력 중시 
  • 사람을 다치게 한 자는 곡물로 배상한다. > 농경 사회
  • 도둑질한 자는 노비로 삼되, 용서받으려면 50만 전을 내야한다. > 사유재산, 계급사회, 화폐사용

 

  • 비파형 동검, 탁자식 고인돌의 출토 지역을 통해 고조선의 문화 범위를 알 수 있다.
  • 사회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범금 8조가 있었다.
  • 기원전 4~3세기경 고조선은 전국 7웅 중 하나인 연과 대적할 만큼 성장하였다.
  • 기원전 3세기경 고조선에는 부왕 등 강력한 왕이 등장하여 왕위를 세습하였다.
  • 왕 아래 상, 대부, 장군 등의 관직을 두었다.
  • 기원전 3세기 초 고조선은 연의 장수 진개의 공격을 받아 땅을 빼앗겼다.
  • 위만은 진,한 교체기에 무리를 이끌고 고조선에 들어와 준왕을 몰아내고 왕이 되었다.
  • 위만 집권 이후 고조선은 중국의 한과 한반도 남부 진국 사이에서 중계무역을 통해 많은 이익을 얻었다.
  • 위만 집권 이후 고조선은 진번과 임둔을 복속시켜 세력을 확장했다.
  • 조선상 역계경은 자신의 건의를 우거왕이 받아들이지 않자 무리를 이끌고 진국으로 남하하였다.
  • 우거왕 때 한 무제의 공격으로 왕검성이 함락되었다.

 

 

<부여, 고구려, 옥저, 동예, 삼한>

  정치 제천행사 결혼 풍습 경제
부여 사출도(마,우,구,저가) 영고 형사취수제 순장, 1책 12법 반농반목
고구려 제가회의
왕, 대가 ← 사자, 조의, 선인
욕살, 처려근지
동맹 형사취수제, 서옥제 1책 12법 약탈경제
부경(창고)
옥저 군장 : 읍군, 삼로 X 민며느리제 가족 공동 묘 소금, 해산물
동예 무천 족외혼 책화, 집터(呂 / 凸) 단궁, 과하마, 반어피
삼한 제정분리
소도(천군) - 제사
군장 : 신지, 읍차 - 정치
계절제     벼농사(두레, 저수지)
철(변한) 

 

 

부여

  • 부여에서는 여러 가들이 별도로 사출도를 주관하였다.
  • 부여는 12월에 영고라는 제천 행사를 열었다.
  • 부여와 고구려에서는 남의 물건을 훔쳤을 때 12배로 배상하게 하였다.

 

 

고구려

  • 제가회의에서 나라의 중요한 일을 결정했다.
  • 왕 아래 상가, 고추가 등의 대가들이 있었으며, 이들은 사자, 조의, 선인 등을 거느렸다.
  • 10월에 동맹이라는 제천행사를 열었다.
  • 혼인 풍습으로 서옥제가 있었다.
  • 집집마다 부경이라는 창고가 있었다.

 

 

옥저

  • 혼인 풍속으로 민며느리제가 있었다.
  • 가족의 유골을 한 목곽에 안치하는 풍습이 있었다. (가족 공동 묘)
  • 고구려에 예속되었던 옥저는 소금, 어물 등 해산물이 풍푸하여 이를 고구려에 바쳤다.

 

 

동예

  • 특산물에는 단궁, 과하마, 반어피 등이 있다.
  • 10월에 무천이라는 제천 행사를 열었다.
  • 옥저와 동예는 읍군, 삼로라고 불리는 군장이 있었다.
  • 읍락 간의 경계를 중요시하는 책화라는 풍습이 있었다.

 

 

삼한

  • 신치, 읍차 등의 지배자가 있었다.
  • 제사장인 천군과 신성 지역인 소도가 있었다.
  • 변한은 철이 많이 생산되어 낙랑과 왜에 수출했다.

 

 

 

 

 

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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