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선사시대
- 구석기 시대에 주로 동굴이나 강가의 막집에서 거주했다.
- 구석기 시대에 주먹도끼, 찍개 등의 뗀석기를 만들기 시작했다.
- 신석기 시대에 가락바퀴를 이용하여 실을 뽑았다.
- 신석기 시대에 빗살무늬 토기를 만들어 식량을 저장했다.
- 신석기 시대에 농경과 목축을 시작하였다.
- 신석기 시대까지 사람들은 계급이 없는 평등한 공동체 생활을 했다.
국가의 형성
- 청동기 시대에 거푸집을 이용하여 청동 무기를 제작했다.
- 청동기 시대에 지배층의 무덤으로 고인돌을 축조했다.
- 청동기 시대에 의례 도구로 청동 거울과 청동 바울 등을 제작했다.
- 철기 시대에 거푸집을 이용하여 세형동검을 제작했다.
- 철기 시대에 명도전, 반량전 등의 중국 화폐가 유통됐다.
- 철기 시대에 쟁기, 쇠스랑 등의 철제 농기구를 사용했다.
고조선
- 고조선은 연의 장수 진개의 공격을 받아 영토를 빼앗겼다.
- 고조선에는 사회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범금8조를 두었다.
- 고조선의 위만은 진번과 임둔을 복속하여 세력을 확장했다.
- 고조선은 우거왕때 한 무제가 파견한 군대와 맞서 싸웠다.
초기 여러 나라
- 고구려에는 집집마다 부경이라는 창고가 있었다.
- 고구려의 대가들이 사자, 조의, 선인 등의 관리를 거느렸다.
- 부여는 12월에 영고라는 제천 행사를 열었다.
- 부여는 여러 가(加)들이 별도로 사출도를 주관했다.
- 옥저는 혼인 풍습으로 민며느리제가 있었다.
- 동예는 읍락 간의 경계를 중시하는 책화가 있었다.
- 삼한에는 신지, 읍차라고 불린 지배자가 있었다.
- 삼한은 제사장인 천군과 신성 지역인 소도가 존재했다.
삼국의 성립과 발전
[고구려]
- 고구려는 빈민을 구제하기 위해 진대법을 실시했다.
- 미천왕이 서안평을 점령하고 낙랑군을 축출했다.
- 고국원왕이 백제의 평양성 공격으로 전사했다.
- 소수림왕이 전진으로부터 불교를 수용했다.
- 광개토대왕이 후연을 격파하고 백제를 공격했다.
- 광개토대왕이 신라에 군대를 파견하여 왜를 격퇴했다.
- 장수왕이 도읍을 국내성에서 평양으로 옮겼다.
- 고구려의 을지문덕이 살수에서 수의 군대를 물리쳤다.
[백제]
- 근초고왕 때 고흥에게 『서기』를 편찬하게 했다.
- 침류왕 때 동진에서 온 마라난타를 통해 불교를 수용했다.
- 백제는 무령왕 때 지방에 22 담로를 두어 왕족을 파견했다.
- 백제는 성왕 때 사비로 천도하고 국호를 남부여로 고쳤다.
- 성왕은 신라와 연합하여 한강 하류 지역을 되찾았으나 관산성 전투에서 피살됐다.
- 무왕 때 익산에 미륵사를 창건하였다.
- 의자왕이 윤충을 보내 신라의 대야성을 함락시켰다.
[신라]
- 내물왕 때 최고 지배자의 칭호가 마립간으로 바뀌었다.
- 지증왕 때 시장을 감동하는 동시전이 설치되었다.
- 법흥왕, 병부를 설치하고 율령을 반포했다.
- 법흥왕, 건원이라는 독자적 연호를 사용했다.
- 법흥왕, 금관가야를 복속하여 영토를 확대했다.
- 진흥왕, 화랑도를 국가 조직으로 개편했다.
- 선덕여왕, 자장의 건의로 황룡사 9층 목탑이 건립되었다.
가야 연맹
- 수로왕이 세운 금관가야는 김해 지역을 중심으로 발전했다.
- 가야에서는 철이 많이 생산되어 낙랑, 왜 등에 수출하였다.
- 금관가야의 시조 김수로왕의 설화가 『삼국유사』에 전해진다.
- 광개토대왕의 공격으로 가야 연맹의 중심이 금관가야에서 대가야로 이동하였다.
- 대가야는 후기 가야 연맹을 주도했다.
- 대가야는 진흥왕 때 신라에 복속되었다.
삼국의 통치 체제
- 고구려 소수림왕은 태학을 설립하여 인재를 양성했다.
- 고구려는 욕살, 처려근지 등을 지방관으로 파견했다.
- 백제는 정사암에 모여 국가의 중대사를 논의했다.
- 백제는 내신좌평 등 6좌평의 관제를 정비했다.
- 신라에는 만장일치제도로 운영된 화백회의가 있었다.
- 신라 법흥왕 때 병부와 상대등을 설치했다.
- 신라 법흥왕 때 건원이라는 독자적 연호를 사용했다.
삼국의 대외 항쟁
- 의자왕 때 백제가 신라의 대야성을 점령했다.
- 연개소문이 정변을 일으켜 권력을 장악하고 보장왕을 왕으로 세웠다.
- 진덕여왕 때 김춘추의 활약으로 신라가 당과 군사 동맹을 체결했다.
- 백제 멸망 후 복신과 도침이 부여풍을 왕으로 추대했다.
- 고구려 부흥 운동 중 안승이 신라에 의해 보덕국왕으로 임명되었다.
- 고구려 멸망 이후 당이 안동도호부를 평양에 설치했다.
- 신라가 매소성에서 당군을 물리쳐 나당전쟁의 주도권을 잡았다.
통일 신라의 변화
- 신라 중대에 김춘추가 진골 출신 최초로 왕우에 올랐다.
- 신문왕 때 왕의 장인인 김흠돌이 반란을 도모했다.
- 신라 원성왕, 독서삼품과를 실시하여 관리를 채용했다.
- 현덕왕 때 무열왕의 직계인 웅천주 도독 김헌창이 난을 일으켰다.
- 진성여왕 때 원종과 애노가 사벌주에서 봉기했다.
발해의 건국과 발전
- 대조영이 고구려 유민을 이끌고 동모산에서 발해를 건국했다.
- 발해 무왕은 장문휴를 보내 당의 등주를 공격했다.
- 발해 무왕은 제 2대 왕으로, 일본에 사신과 국서를 보내 교류를 시작했다.
- 발해는 전성기에 해동성국이라고 불렸다.
- 발해는 무왕은 인안, 문왕은 대흥 등의 연호를 사용했다.
- 발해는 5경 15부 62주의 지방 행정 제도를 마련했다.
남북국 통치 체제
- 통일신라는 위화부 등 13부를 두어 행정 업무를 분담했다.
- 통일 신라는 9주 5소경의 지방 행정 제도를 갖추었다.
- 통일 신라는 지방관을 감찰하기 위해 외사정을 파견했다.
- 발해는 정당성의 대내상이 국정을 총괄했다.
- 발해는 주자감을 설치하여 인재를 양성했다.
- 발해는 중정대를 두어 관리를 감찰했다.
고대의 경제
- 지증왕 때 시장을 관리하는 관청인 동시전을 설치했다.
- 지증왕 때 소를 이용한 우경을 장려했다.
- 진흥왕, 한강 유역을 차지하고 당항성을 통해 중국과 직접 교역했다.
- 통일 신라는 인구수, 소와 말의 수 등을 조사하여 촌주가 3년마다 민정문서를 작성해 세금 징수에 활용했다.
- 신문왕은 관료전을 지급하고 녹읍을 폐지했다.
- 성덕왕은 백성들에게 정전을 지급했다.
- 산둥반도에 신라방, 신라소, 신라관 등이 설치되었다.
- 통일 신라 시대에 울산항, 당항성이 무역항으로 번성했다.
- 신라 말 장보고는 완도에 청해진을 설치해 해상 무역을 장악하고 산둥반도에 법화원을 지었다.
- 발해는 거란도, 영주도 등을 통해 주변국과 교류했다.
- 발해에서 솔빈무의 말이 특산물로 거래되었다.
- 발해는 밭농사가 중심이었고 일부 지역에서는 벼농사도 지었다.
- 발해는 산둥반도에 발해관을 설치하고 당과 활발하게 교류했다.
고대의 사회
- 백제는 왕족인 부여씨와 8성의 귀족이 지배층을 이루었다.
- 백제는 중국 남조와 주로 교류하면서 귀족 문화가 발전했다.
- 신라의 골품제는 집과 수레의 크기 등 일생생활까지 규제하였다.
- 신라는 골품에 따라 관등 승진에 제한이 있었다.
- 신라는 만장일치제로 운영된 화백회의가 있었다.
- 원광은 화랑도의 규범인 세속 5계를 제시했다.
- 화랑도는 진흥왕 때 국가적인 조직으로 정비되었다.
- 현덕왕 때 웅천주 도독 김헌창이 아버지가 왕이 못된 것에 원한을 품고 반란을 일으켰다.
- 신라 하대에 빈공과를 준비하는 6두품 출신 유학생을 볼 수 있다.
- 신라 하대에 원종과 애노의 난, 적고적의 난 등 농민 봉기가 일어났다.
- 최치원은 진성 여왕에게 시무 10여 조를 건의했다.
- 신라 말 6두품은 골품제를 비판하면서 호족과 연계하여 새로운 정치 이념을 제시했다.
- 신라 말 참선을 중시하는 선종의 유행으로 승탑이 많이 제작됐다.
고대의 문화
- 강수는 외교 문서 작성에 능하여 청방인문표를 지었다.
- 설총은 '화왕계'를 지어 국왕에게 바쳤다.
- 설총은 한자의 음훈을 빌려 우리말을 표기한 이두를 정리했다.
- 김대문은 진골 귀족 출신으로 『화랑세기』,『고승전』 등을 저술했다.
- 최치원은 진성여왕에게 시부 10여 조를 올렸다.
- 진성여왕 때 각간 위홍과 대구화상이 향가 모음집인 『삼대목』을 편찬했다.
- 원광은 화랑도의 생활 규범인 세속 5계를 지었다.
- 자장은 황룡사 9층 목탑의 건립을 건의했다.
- 원효는 '무애가'를 지어 불교 대중화에 기여했다.
- 원효는 『금강삼매경론』을 저술했다.
- 혜초는 인도와 중앙아시아를 다녀와서 『왕오천축국전』을 저술했다.
- 의상은 부석사를 창건했다.
- 의상은 『화엄일승법계도』를 지어 화엄 사상을 정리했다.
- 선종은 참선과 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고자 했다.
- 신라 하대에 9산 선문 중 하나인 가지산문을 개창하였다.
- 부여 능산리 절터에서 국보로 지정된 금동대향로가 출토되었다.
- 불국사 3층 석탑에서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발견되었다.
- 고구려의 굴식 돌방무덤에 당시 생활상을 담은 수렵도 등의 벽화가 남아 있다.
- 서울 석촌동 고분군에서 계단식 돌무지무덤이 위치하고 있다.
- 공주 송산리 고분군에서 무령왕과 왕비의 무덤이 발굴되었다.
- 무령왕릉에서 매지권이 새겨진 지석과 석수가 출토되었다.
- 무령왕릉은 중국 남조의 영향을 받아 벽돌무덤으로 축조하였다.
- 신라의 돌무지덧널무덤은 나무로 곽을 짜고 그 위에 돌을 쌓았다.
- 신라 통일 이후 굴식 돌방무덤의 둘레돌에 12 지신상을 조각했다.
- 고구려에서 연가 7 연명 금동여래입상을 제작했다.
- 분황사터에 돌을 벽돌 모양으로 다듬어 쌓아 올린 탑이 남아 있다.
- 미륵사지 석탑 해체 과정에서 금제 사리봉영기가 발견되었다.
- 백제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은 백제의 미소라고 불린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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