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한국사

한국사능력검정시험 기출 개념 정리3 / 조선의 성립과 발전(1)

by _Ahmooooo 2023. 4. 12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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조선 시대

◆ 조선 왕조 계보

태조(이성계) - 정종 - 태종(이방원) - 세종 - 문종 - 단종 - 세조 - 예종 - 성종 - 연산군 - 중종 - 인종 - 명종 - 선조 - 광해군 - 인조 - 효종 - 현종 - 숙종 - 경종 - 영조 - 정조 - 순조 - 헌종 - 철종 - 고종 - 순종

 

  • 정도전은 『불시잡변』을 지어 불교를 비판했다.
  • 정도전은 『조선경국전』을 저술하여 통치 제도 정비에 기여했다.
  • 태종은 왕권 강화를 위해 6조 직계제를 실시했다.
  • 태종, 주자소가 설치되어 계미자가 주조되었다.
  • 세종, 학문 연구소인 집현전을 설치했다.
  • 세종, 이종무를  파견하여 대마도를 정벌하였다.
  • 수양대군이 계유정난을 일으켜 김종서 등을 살해하고 권력을 장악했다.
  • 세조 때 성삼문 등이 단종 복위 운동을 일으키자 집현전을 폐지하였다.
  • 세조 때 함길도 토착 세력이 일으킨 이시애의 난을 진압하였다.
  • 신숙주가 세종 때 일본에 다녀와 성종 때 『해동제국기』를 저술하였다.
  • 성종 때 법령을 정비하여 『경국대전』을 반포했다.
  • 성종 때 음악 이론 등을 집대성한 『악학궤범』이 완성되었다.
  • 성종 때 국가의 의례를 정비한 『국조오례의』를 편찬하였다.
  • 연산군, 김종직의 '조의제문'이 발단이 되어 김일손 등이 처형되는 무오사화가 일어났다.
  • 연산군, 폐비 윤시 사사 사건의 전말이 알려져 갑자사화가 일어났다.
  • 중종, 조광조의 주장으로 신진 인사를 등용하기 위한 현량과를 실시하였다.
  • 기묘사화는 위훈삭제에 대한 훈구 세력의 반발이 원인이었다.
  • 중종, 조선 정부의 통제에 반발하여 일본인들이 삼포왜란을 일으켰다.
  • 중종, 외침에 대비하기 위해 임시기구로 비변사가 설치되었다.
  • 명종, 외척 간의 대립으로 을사사화가 일어나 윤임이 제거되었다.
  • 명종, 양재역 벽서 사건으로 이언적 등이 화를 입었다.

 

◆ 조선 중앙 통치 조직

  • 의정부는 국정을 총괄하는 중앙 관서로, 6조 직계제 실시로 권한이 약화되었다.
  • 사헌부와 사간원은 5품 이하의 관리 임명 과정에서 서경권을  행사하였다.
  • 사헌부, 사간원, 홍문관은 함께 3사로 불렸다.
  • 사간원은 간관으로 간쟁과 봉박을 담당 했다.
  • 홍문관은 집현전 학문 연구 기능을 계승하였다.
  • 승정원은 왕의 비서 기관으로 왕명 출납을 관장하면서 은대, 후원이라고도 불렸다.
  • 춘추관은 실록을 보관하고 관리하는 업무를 맡았다.
  • 의금부는 국왕 직속 사법 기구로 반역죄, 강상죄 등을 처결하였다.
  • 한성부는 수도의 행정과 치안을 담당하였다.

 

◆ 조선 지방 행정 조직

  • 관찰사는 관내 군현의 수령을 감독하고 근무 성적을 평가하였다.
  • 수령은 지방의 행정, 사법, 군사권을 행사하였다.
  • 조선시대 향리는 호장, 기관 장교, 통인 등으로 분류되었다.
  • 유향소는 좌수와 별감을 선발하여 운영하였다.

 

◆ 조선의 군대

  • 세조 때 지방 방어 체제로 진관 체제를 실시하여 국방을 강화하였다.
  • 조선 전기 잡색군은 유사시에 향토방위를 맡는 예비군이었다.
  • 선조 때 임진왜란 중에 유성룡의 건의로 훈련도감이 설치되었다.
  • 훈련도감은 포수, 사수, 살수의 삼수병으로 편제되었다.
  • 인조 때 총융청과 수어청을 창설하여 도성을 방어하였다.
  • 효종 때 어영청을 중심으로 북벌을 추진하였다.

 

◆ 조선의 관리 등용 제도

  • 문과 급제자는 홍패를 수여받았고, 소과 급제자는 백패를 받았다.
  • 기술관을 선발하는 잡과는 해당 관청에서 시행하였다.
  • 소과에 합격한 생원, 진사에게 성균관 입학 자격을 주었다.
  • 식년시는 원칙적으로 3년마다 치러졌으며, 증광시 등의 부정기 시험이 있었다.
  • 중종 때 천거에 의해 관리를 선발하는 현량과가 실시되었다.
  • 과거제는 갑오개혁으로 폐지되었다.

 

◆ 조선 초기 대외 관계

  • 세종 때 김종서가 6진을 개척하여 영토를 확장하였다.
  • 중국으로 보낸 사신은 하정사, 성절사, 천추사 등으로 구분되었다.
  • 세종 때 일본과 제한된 범위의 무역을 허용한 계해약조가 체결되었다.
  • 한성에 동평관을 설치하여 일본과의 무역을 허용하였다.
  • 임진왜란 이후 일본과 기유약조를 체결하고 부산에 초량왜관을 설치하였다.
  • 임진왜란 후 막부의 요청에 따라 통신사를 파견하여 조선의 문물을 전파하였다.
  • 병자호란 이후 청에 정기적으로 연행사를 보내 교류하였다.

 

◆ 임진왜란(1592, 선조)

  • 임진왜란 개전 초기에 부산에서 부사 송상현과 첨사 정발이 순절하였다.
  • 신립이 충주 탄금대에서 배수의 진을 치고 싸웠다.
  • 곽재우, 고경명 등이 의병장으로 활약하였고, 정문부가 길주에서 의병을 이끌었다.
  • 이순신이 한산도 앞바다에서 학익진을 펼쳐 승리하였다.
  • 김시민이 진주성에서 적군을 크게 물리쳤다.
  • 조명연합군이 평양성을 탈환하였다.
  • 권율이  행주산성에서 적군을 격퇴하였다.
  • 포로 송환을 위하여 유정을 회답 겸 쇄환사로 파견하였다.

 

◆ 호란(여진족)

  • 광해군 때 강홍립 부대가 사르후 전투에 참전하였다.
  • 인조반정 직후 공신 책봉에 불만을 품고 이괄이  반란을 일으켰다.
  • 이괄의 난 때 인조가 도성을 떠나 공산성으로 피란하였다.
  • 정묘호란 때 정봉수와 이립이 용골산성에서 항전하였다.
  • 병자호란 때 김준룡이 근왕병을 이끌고 광교산에서, 임경업이 백마산성에서 항전하였다.
  • 병자호란 때 김상용이 강화도에서 순절하였다.
  • 병자호란 결과 인조가 삼전도에서 항복하고 소현 세자와 봉림대군 등이 청에 인질로 끌려갔다.
  • 효종 때 어영청을 중심으로 북벌을 추진하였다.
  • 효종 때 청의 요청으로 나선 정벌에 조총 부대를 파견하였다.

 

◆ 붕당 정치

  • 선조 때 이조전랑 임명을 둘러싸고 사림이 동인과 서인으로 나뉘었다.
  • 정여립의 난으로 기축옥사가 일어나 동인이 남인과 북인으로 나뉘는 계기가 되었다.
  • 광해군은 인목대비 유폐와 영창대군 사사를 명분으로 폐위되었다.
  • 광해군을 폐위한 인조반정으로 서인이 정권을 장악하였다.
  • 남인은 이언적과 이황의 제자들이 주류를 이루었다.
  • 효종이 사망한 후 자의대비 복상 문제로 예송이 전개되었다.
  • 서인은 기해예송(1차 예송)에서 자의대비의 기년복을 주장하였다.
  • 숙종 대 경신환국으로 허적과 윤휴 등 남인이 대거 축출되었다.
  • 숙종 때 희빈 장씨 소생의 원자 책봉 문제로 기사환국이 발생하였다.
  • 숙종 때 기사환국으로 송시열이 관직을 삭탈당하고 유배되었다.
  • 숙종 대 기사환국으로 인현왕후가 폐위되고 남인이 권력을 장악하였다.
  • 숙종 때 청과의 경계를 정한 백두산정계비를 세웠다.

 

◆ 탕평 정치(영조, 정조)

  • 영조 때 이인좌를 중심으로 한 소론 세력이 난을 일으켰다.
  • 영조는 붕당의 폐해를 경계하기 위한 탕평비를 건립하였다.
  • 영조 때 군역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균역법이 제정되었다.
  • 균역법의 시행으로 일부 부유한 양민에게 선무군관포를 징수하였다.
  • 영조 때 『동국문헌비고』를 편찬하여 역대 문물을 정리하였다.
  • 영조 때 『속대전』을 편찬하여 통치 체제를 정비하였다.
  • 영조 때 준천하를 신설하여 청계천을 준설하고 홍수에 대비하였다.
  • 정조는 국왕의 치누이 부대인 장용영을 설치했다.
  • 정조는 수원화성에 장용영의 외영을 설치하였다.
  • 정조는 유능한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초계문신제를 실시하였다.
  • 정조는 육의전을 제외한 시전 상인의 금난전권을 폐지하였다.
  • 정조 때 통치 체제를 정비하기 위해 『대전통편』이 편찬되었다.
  • 정조 때 서얼 출신의 학자들이 규장각 검서관에 기용되었다.
  • 정조 때 군사 훈련 교범인 『무예도보통지』가 간행되었다.
  • 정조 때 대외 관계를 정리한 『동문휘고』를 간행하였다.

 

◆ 세도 정치

  • 서북인에 대한 차별에 반발하여 홍경래의 난이 일어났다.
  • 전정, 군정, 환곡의 삼정이 문란하였다.
  • 이양선이 나타나 통상을 요구했다.

 

◆ 조선 후기 권력 구조

  • 비변사는 세도 정치 시기에 외척 세력의 권력 기반이 되었다.
  • 비변사는 을묘왜변을 계기로 상설기구화 되었다.
  • 비변사는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조직과 기능이 확대되었다.

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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